두 번이나 강조하는 의도를 알았다. 베릭은 전처럼 달아나지 말라고 돌려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바다색 눈동자가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스는 사파이어를 닮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도망칠 수 없음을 한 번 더 느꼈다. 애원하는 아름다운 눈동자를 거역할 힘이 자신에겐 없었다. "네." 왠지 목이 메었다. 세스는 마른 침을 삼킨 다음 속삭이듯 말했다. "내일...
세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언젠가 딱 한 번 만났던 베릭의 큰 형이 떠올랐다. 삼십 대의 젊은 백작은 차갑고 엄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위압감을 갖고 있던 백작을 회상하며 세스는 중얼거렸다. "용기가 대단하시네요. 백작님께서 화내실 텐데." "그러는 형도 집에 있었던 적이 별로 없었잖아. 나한테 뭐라 할 처지가 못 돼." "백작님이야 전쟁...
이야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도망 안 갔어요. 소설 다 쓰면 돌아가려 했어요.” “그래서. 다 쓰면 내 얼굴 볼 생각은 했어?” “......네.” “대답이 늦군.” 베릭은 콧방귀를 뀌더니 가까이 다가갔다. 그에게서 짙고 우아한 장미향이 났다. 화사한 미모에 잘 어울리는 향이었다. 세스는 이유 없이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베릭은 세스가 더 이상 도망칠...
"갸앙......" "괜찮아?" 조심스럽게 물으며 세스는 동물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의 초록색 눈동자에 의아함이 서렸다. 동물은 생각보다 훨씬 신기한 외양을 하고 있었다. 뾰족하고 긴 귀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동물은 이마에 붉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누가 동물한테 이런 그림을. 세스는 손가락으로 동물의 이마를 문질렀다. 하지만 보드라운 털만 느껴질 뿐, ...
* * * 며칠 후, 왜 은서가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싫어.” 은서가 대사가 적힌 종이를 흔들었다. “해준다며.” “아, 싫다고.” “실망이다.” “야!” 냅다 그가 흔들고 있던 종이를 가로챘다. “키스씬까지 봐줘야한단 말은 안 했잖아.” 은서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내가 키스하기 직전인 얼굴이랑 키스하고 난 다음 얼굴 봐달라...
“푸핫!” 그만 웃음이 올라왔다. “천은서가, 푸흐흑, 성인 영화하하학!” “......” “어휴, 다 컸네. 쪼끄만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십구금도 찍고.” “그러는 넌 컸어?” “너보단 컸지.” “그리고 나보단 안 크게 됐고.” “......시바.” “아무튼. 도와줄 거냐고.”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도와줄 건지 말건지 그것부터 말해.” 그렇게...
친구가 최고라고 하는 거나, 천은서가 최고라고 하는 거나 똑같은데. 대체 무슨 차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려니 넘어가 주기로 했다. 자극적인 냄새를 풍기는 저 치킨을 어서 먹어야 하니까. 나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은서가 가져온 음식들로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우리는 치킨을 가운데에 놓고 벚꽃 술을 나눠 마셨다. “일본 좋았냐?” “일하러 간 건데, 뭐....
침을 한 번 삼킨 다음 조심스레 물었다. “받고 싶은 거 있냐? 아님 뭐, 밥이라도 사줄까?” “받고 싶은 게 있다면. 해줄 의향은 있고?” “당연하지!” 은서의 얼굴에 웃음이 천천히 번졌다. 그는 웃는 걸 참으려는지 헛기침을 해댔다. 그런다고 꿈틀거리는 입 꼬리를 숨기진 못했지만. 그렇게도 좋나? 혹시라도 불가능한 걸 시킬까봐 얼른 말을 덧붙였다. “돈은...
(* 차은서에서 천은서로 이름 바꿨어요:) ) 오버 떨지 말라는 뜻이 담긴 욕이었다. 말뜻을 알아차렸는지 은서의 뺨이 옅은 분홍빛으로 변했다. 은서는 하얗고 긴 목을 긁적이더니 몸을 돌렸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를 나는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러다 문득, 핸드폰을 부서져라 쥐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혹시라도 은서가 내 동요를 알아차릴까, 부리나케 욕실로...
진심으로 질투가 난 모양이었다. 새삼 좋아해달라고 난리 피우는 게 어이없었지만, 크게 놀라진 않았다. 어릴 때부터 인형같이 예뻤던 은서는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런데도 은서는 유독 나한테 예쁨 받으려고 안달이었다. 딱히 애정결핍이거나, 자존감이 낮아보이지도 않는데도. 한 때 이런 은서가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왜 굳이 나한...
망할. “아까도 말했지만...... 나한텐 그냥 털어도 돼.” 망할! “전혀 상관 없으니까.” 조용히 읊조리는 은서의 눈동자에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아주 눈물 나게 고마운 상황이다. 불알친구가 남자 좋아한다고 말했음에도 상관없다고까지 해주다니. 녀석의 됨됨이가 제법임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맞아, 나 남자 좋아해.’라고 고백할...
어느새 주먹 쥐고 있는 은서의 손을 잡아다 살살 주물렀다. 투명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녀석의 피부는 평소보다 더 뽀얀 색이었다. 이게 정녕 스물 여덟 살의 피부인가, 감탄하고 있는 사이 은서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맙단 말 안 해?” “고맙습니다.” “다시.” “감샤합니다, 형님. 길바닥에 안 버려줘서 진심으로.” 그제야 은서가 ‘흥’하고 콧방귀를 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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