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비가 오지 않은 밤하늘이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창백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연청은 담백석 달빛을 받으며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연청은 다른 이들과 사뭇 다른 외양을 하고 있었다. 젊은 청년의 얼굴임에도 비단 끈으로 묶어둔 머리칼은 별빛 같은 은색이었다. 거기다 은색 속눈썹에 반쯤 가려진 눈동자는 특이하게도 푸른 색깔이었다. 모두...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한 채 여우는 통통한 앞발을 내밀었다. 살짝 열려 있던 창문이 쉽게 뒤로 젖혀졌다. 여우는 능숙하게 폴짝 뛰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으로 내려온 여우는 책상 위를 보았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딸기 두 개가 놓여 있었다. “?” 여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왜 안 먹었지? 분명히 전에 놔뒀을 때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베릭이 다시 입을 떼었다. “물어보자.” “누구한테?” “마을 사람들.” 베릭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토박이인 마을 사람들이라면 그 알 수 없는 동물의 정체를 알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세스는 석연치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댔다. “우릴 미친 놈 보듯 하면 어떡해. 꼬리 두 개 달린 여우라니...
감미로움에 푹 빠지지 않기 위해 세스는 다급히 울렁이는 기분을 가다듬으려 했다. 하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의 리듬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쿵, 쿵, 쿵. * * * 불행인지, 다행인지 세스는 새로운 사건 때문에 설렘을 잊게 되었다. 방문을 연 세스는 입을 떡 벌린 채 멈춰 섰다. “어, 어......?” 책상이 양피지들로 뒤덮여 있었다. 분명 아침만 해...
“무슨 생각해?” 나지막한 목소리가 회상을 흔들었다. 멍하니 옛날 생각을 하던 세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베릭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떠올라서.” “아.” 베릭이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하고 있었네.” 뻔뻔할 정도로 자신 있는 말투에 세스도 따라 미소 지었다. “응, 좋은...
* * * "자." 마을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베릭이 슬며시 물었다. "이제 말 놓을 준비 됐어?" "아뇨." "흠." "......그냥 존대할까요?" "왜. 이왕 말 나온 김에 편하게 하고 싶은데." 베릭이 웃었다. "해봐, 어서. 하다보면 익숙해질 거야." "그렇게 말하면 더 못하겠다고요." "알았어, 기다릴게." 십 초 가량 지났을까, 베릭이 다시 물...
“어떻게 된 거야?”“......어제 만난 애예요. 잼통에 끼어 있어서 빼줬어요. 그러다 살짝 긁힌 거고.”“살짝 맞아?”세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왜 자꾸 못 믿겠다는 듯이 물어요?”“뭐?”베릭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걱정되니까 그렇지!”네가 왜 짜증 내냐는 말투였다.“큰 상처면 어쩌나 싶어서.”“그게 베릭과 무슨 상관인데요.”“왜 상관없어?”파란 눈동...
그 말에 베릭이 짜증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른 손으로 여우의 뒷다리를 받쳐 들었다. “됐어?” “네?” “네가 말 안 해도 알아서 조심히 들고 있거든?” “아, 아니......!” 답답해진 세스는 얼른 두 손을 내저었다. “공자님이 조심하라고! 쟤 할퀴어요!” 다급한 나머지 '공자님'이라는 호칭이 나왔다. 옛호칭에 베릭의 얼굴이 누그러진 찰나였다. 여우...
동물은 물끄러미 보다가 천천히 다가왔다. 주먹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냥 못 본 척 달아나는 게 맞지 않았을까? 하지만 긴장감보다 호기심이 컸다.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싶었다. ‘여우인가? 진짜 여우 맞나......?’ 불안과 궁금증이 끓어오르는 도중, 여우(?)의 코가 킁킁거렸다. 여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신 세스의 냄새를 맡았다...
“왜 그렇게 놀라?” 묻는 베릭의 목소리가 담담했다. 그 말에 진정해보려 했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 부근에 쟁쟁하게 울렸다. 혹시라도 베릭이 들을까 싶어 와락 겁이 났다. 세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시선을 피했다. “놀라긴요.” “놀랐던데.” “아무 생각 없었어요.” 빠르게 반박하며 아무 곳으로나 발길을 움직였다. 등 뒤에서 베릭의...
지끈거리는 팔에서 신경을 거두기 위해 세스는 입을 떼었다. “할 일 한다고 했죠? 뭐 할 거예요?” “나?” 되물은 베릭은 옆에 메고 있던 가방을 두드렸다. “여기 있어, 할 일.” “?” 세스는 가방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뭔데요?” 베릭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가방을 열어 안을 보여주었다. 가방 안에는 책 한권이 있었다. “꺼내 봐도 돼요?” “얼...
베릭은 금방 기분 좋아하는 표정이 되었다. 세스는 황당함과 함께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 내 잘못이다. 연락도 안 하고 피하기만 했으니까. 당분간 베릭에게 맞춰 줄 수 있는대로 맞춰주자고 생각하며 입을 떼었다. "딸기는 어디서 났어요?" 웃던 베릭이 고개를 기울였다. "딸기라니?" "딸기요. 어제 제 방에 놔뒀잖아요." "무슨 소리야." 그렇게 묻는 베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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