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초 동안 안마하던 하준은 갑자기 자신이 처량 맞게 느껴졌다. 너부러진 옷가지들, 구겨진 이불과 전등을 갈지 않아 어둠침침한 빛. 버름한 방 안에서 홀로 허리를 주물거리는 자신. 하준의 손이 멈췄다. 하민성은 뭘 하고 있을까? 시간을 확인하니 여덟시 반이다. 저녁은 이미 먹었겠구나. 부모님과 아내 될 여인과 한창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본격적인 결혼...
* 으레 그렀듯이, 잠을 자겠다는 의지는 실패로 끝났다. 막상 침대에 누웠으나 졸음이 싹 가셔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하준이 할 수 있는 건 이불을 끌어안은 채 천장을 보는 일밖에 없었다. 불을 껐음에도 햇살 때문에 천장은 원래의 베이지 색을 보이고 있었다. 천장의 작은 얼룩을 구경하다 시선을 천천히 내렸다. 방바닥에는 온갖 옷들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민성...
급하게 시혁의 손을 쳐냈다. 차갑게 손을 치우는 걸로 굴욕감이 가시지 않았다. 하준은 손톱을 세워 시혁의 손등을 꾹 눌렀다. 시혁은 아파하긴 커녕, 더 짙은 웃음을 보일 뿐이었다. 놀리는 듯한 웃음에 하준이 뾰족한 목소리를 내었다. "왜 웃어요? 아픈 게 좋아요?" "이하준 은근히 한 성격 하네, 싶어서." "몰랐어요? 저 원래 한 성깔 해요." 시혁이 하...
그렇기에 기분이 나쁘다기 보단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어떤 놈이 술 먹고 선배와 뒹군단 말인가? 하준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또라이 새끼 진짜......" "이하준." "네......" 시혁이 플라스틱 컵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진짜 마음 접을 거야?" 직설적으로 묻는 질문에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시혁은 여전히 컵을 손가락으로 쓸며 하준을 보고...
'시혁이 형은 만났어?' "어?" 갑자기 민성의 입에서 시혁 이름이 나오다니. 예상치 못한 말에 하준은 눈만 깜빡였다. '형이 너 괜찮은지 보겠다고 뒤따라 나갔어.' "그랬......냐?" '응, 형도 연락 안 받아서 더 걱정했지.' 그 형 지금 내 앞에서 밥 먹고 있어. 하준은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후 어설프게 말했다. "길이 엇갈렸나 보다. 못 만났어...
두 사람은 말없이 담배를 폈다. 미처 창으로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한 회색 연기가 방을 뿌옇게 덮을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무니 바깥 소음이 더욱 또렷해졌다. 차 바퀴가 끌고 가는 소리, '야!'하고 누군지 모를 사내의 고성, 길을 걷는 사람들의 웃음. 다양한 소리들이 뒤엉켜서 불협화음을 내었다. 하준이 서울은 어느 시간대이든 시끄럽다고 생...
관찰하듯 예리한 눈초리에 긴장되었다. 그는 딱히 화가 난 것 같아보이진 않았지만 지은 죄가 있는 하준으로선 독수리 눈처럼 매섭게 느껴졌다. 멋쩍은 미소를 지으려는데 바람이 휭휭 불었다. 하얀 눈송이 하나가 나부끼는 남자의 머리칼 사이로 들어갔다. 그게 꼭 커다란 먼지덩이처럼 느껴져 하준은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렸다. 그가 머리카락 사이에 끼인 눈송이를 털어내...
"사과 받을 생각 없으니 걱정 마." 시혁은 정액이 묻지 않은 왼손으로 하준의 볼을 톡 건드렸다. 깜짝 놀란 하준은 얼결에 볼을 감쌌고, 곧 자신의 뺨이 뜨겁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분명 토마토처럼 익었을 게 분명한 온도에 하준은 눈을 내리깔았다. "선배 게이에요?" 툭 내뱉은 질문에 시혁이 느리게 말했다. "그게 지금 할 질문일까." "왜 못해요." "너...
걔를 좋아한지 5년 됐어요. 네, 스물 네 살이요. 처음부터 이런 마음 가진 건 아니에요. 그저 친구였지. 그 친구와 언제 술을 마신 적 있었어요. 각자 고민 이야기를 하다 그만 말실수를 했어요.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걔가 뭐라는 줄 알아요? 바이래요. 자기도 남자를 좋아한대요. 그건 잘못되지 않은 거랬어요. 절대로 잘못되지...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